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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이희영) – 국가 부모제 · 청소년 권리 · 미래 사회

by 생각의 잔상 2025. 8. 1.

페인트 관련 사진

이희영 작가의 청소년 소설 『페인트』는 단순한 문학작품을 넘어, 미래 사회에 대한 통찰과 현실 청소년의 권리 문제를 깊이 있게 고찰한 수작이다. 이 소설은 국가가 부모 역할을 대신하는 ‘국가 부모제’를 운영하며, 보호 대상인 청소년들이 일정 나이가 되면 부모 후보와 면접을 통해 입양 여부를 결정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독자는 이 설정을 통해 기존 가족 개념의 해체, 사회제도 속 인간관계의 조건화, 그리고 청소년의 선택과 자율성 문제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페인트』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오늘날 청소년이 처한 현실과 제도적 억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며, 문학이 사회를 어떻게 비추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 글에서는 국가 부모제라는 설정의 문학적 상징성과 그 기능, 청소년 권리의 본질과 역설, 그리고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국가 부모제

『페인트』의 세계관은 ‘국가 부모제’라는 독특하고 충격적인 설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제도는 가정 내 폭력이나 방임 등으로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국가가 양육하고, 일정 연령이 되면 이들이 ‘입양 오디션’에 참가해 부모 후보를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다. 얼핏 보면 아이들이 선택권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감정의 소비와 거래가 당연시되는 왜곡된 시스템이다. 이러한 제도는 인간 관계를 소비와 거래의 대상으로 환원시키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제이는 입양을 앞둔 청소년으로, 부모 후보와의 면접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의 불안과 분노, 회피는 단순한 사춘기의 감정이 아니라, 제도에 의해 감정을 소비하도록 강요받는 개인의 저항이라 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사랑과 돌봄이 아닌, 적합성 평가와 호감도 점수로 정해진다는 설정은 인간성의 붕괴를 의미한다. 특히 작품 속 오디션 장면은 마치 현실에서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는 과정과 흡사해,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마저도 사회적 성과 시스템에 포획된 시대를 은유한다. 이러한 설정은 부모 자격조차 사회적으로 평가되는 현실과 맞물려,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페인트』는 이처럼 설정 자체로도 강한 문학적 상징성을 지니며, 제도의 비인간성과 그 안에서 고통받는 개인의 내면을 치밀하게 드러낸다.

청소년 권리

『페인트』가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청소년 권리에 대한 고찰이다. 작품 속 청소년들은 보호의 대상이자 동시에 제도의 대상이다. 그들은 부모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았지만, 그 선택은 자유롭지 않다. 입양을 앞둔 청소년들은 정해진 절차 속에서 감정을 검열당하고, 자기 자신을 ‘잘 포장’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주인공 제이는 이러한 절차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들춰내야만 한다. 그는 부모를 찾고 싶지만, 진짜 부모가 무엇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이야기 장치가 아니라, 오늘날 청소년이 처한 교육제도나 사회적 구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 설정을 통해 청소년이 단지 보호되어야 할 객체가 아니라, 고유한 권리와 감정을 가진 주체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다고 하면서도, 정해진 틀 안에서만 선택을 허락한다. 이는 ‘자율성의 환상’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성숙한 태도와 전략적인 대화를 요구받는 청소년의 모습은, 오늘날 사회가 청소년에게 강요하는 ‘어른스러움’의 압박과도 유사하다. 특히 부모 후보들과의 인터뷰 장면은, 아이들이 감정을 팔아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왜곡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어 큰 울림을 준다. 결국 『페인트』는 청소년이 겪는 선택의 역설과 자율성의 허구를 날카롭게 드러내며, 그들의 권리를 사회가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미래 사회

『페인트』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실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하는 문학적 장치를 탁월하게 활용한다. 작가는 거창한 재난이나 기술문명이 아닌, 일상적인 제도의 확대를 통해 미래 사회의 통제를 그려낸다. 국가 부모제는 결코 멀리 있는 상상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제도의 연장선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더 큰 현실감을 제공한다. 이는 곧 문학이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성찰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소설 속 인터뷰 방식은 인간의 감정을 평가하고 정량화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는 감정이 진정성보다는 효율성과 적합성의 기준에서 판단되는 사회, 즉 감정의 기능화된 사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조건이 따뜻한 마음이나 진심보다는 사회적 지위, 말투, 이미지라는 점에서, 인간성보다는 외형적 조건이 더 우선시되는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또한 작품 속 아이들은 자신을 포장하고 전략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도 ‘성공 전략’을 강요하고, 자율성과 성숙을 미성년 시기부터 과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페인트』는 이러한 문학적 설정을 통해 청소년 독자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보호란 이름으로 포장된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감정과 관계는 제도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소설 속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이어진다. 결국 『페인트』는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이자, 문학이 수행해야 할 윤리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론

이희영의 『페인트』는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와 인간 본질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을 이끌어낸다. 국가 부모제라는 설정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날카롭게 해체하며, 감정의 진정성과 선택의 자율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청소년을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고자 하는 작가의 메시지는 이 작품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무엇보다 『페인트』는 문학이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그 반영을 통해 어떻게 사회를 질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청소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사회가 제공해야 할 진정한 보호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페인트』는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