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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 가족의 서사, 이민자의 삶, 한국인의 정체성

by 생각의 잔상 2025. 7. 28.

파친코 관련 사진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는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닌, 한 가족의 대를 잇는 삶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이민자의 현실을 심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시작해, 일본 내 조선인의 삶을 네 세대에 걸쳐 서사적으로 풀어낸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인물 각각의 삶과 내면, 감정, 선택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문학적 깊이가 남다르다. 특히 ‘가족’, ‘이민’,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소설은 단순히 외부 세계의 억압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억압 속에서도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심리적, 정체적 여정을 담고 있어 문학적 분석에 풍부한 여지를 제공한다. 본 글에서는 『파친코』가 전하는 가족 서사, 이민자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모색되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문학적 관점에서 살펴 보고자 한다.

가족의 서사

『파친코』의 서사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선자의 출생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결국 그녀의 자녀와 손주 세대까지 이어지며, 한 가족의 대를 이은 삶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관통한다. 선자의 어머니 양진은 남편을 잃은 후 시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딸을 키워내는 인물로, 그녀의 삶은 한국 여성의 강인함을 상징한다. 양진은 사회적으로 미미한 위치에 있지만, 딸에게 삶의 생존법을 몸소 보여주며 정서적 토대를 제공한다. 이후 선자가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며,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선자는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그 속에서 그녀는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이민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녀의 아들 노아는 공부를 잘하고 모범적인 인물로 성장하지만, 출신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차별로 인해 결국 자신을 부정하고,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처럼 『파친코』는 가족이라는 테마 안에서 각 인물의 선택과 감정을 조명하며, 가족이 단순히 혈연이나 공동체가 아니라, 상실과 회복, 부정과 화해를 반복하는 복합적인 관계임을 보여준다. 특히 가족 안에서도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삶을 지속시켜주는 가장 근원적인 울타리임을 강조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단순한 구조적 단위로 환원하지 않고, 시대를 견디는 감정의 연속체로 그려낸다.

이민자의 삶

『파친코』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민자의 삶’이다. 이 소설은 선자가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는, 조선인 이민자들의 생존기를 치밀하게 기록한다. 일본에서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철저히 배제된 소수자로의 낙인을 의미한다. 교육, 취업, 주거 등 사회 전반에서 이들은 이방인으로 취급되며, 제도적으로도 철저히 배제된다. 이는 단순히 인종적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식민지 역사 속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차별이며, 그것이 대를 이어 반복된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문제다. 선자의 가족은 파친코 사업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는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들이 허락받은 몇 안 되는 생존 방식 중 하나다. 파친코는 단순한 오락 사업을 넘어, 생계를 위한 최후의 선택지였으며, 그 안에는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사회적 낙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선자의 남편인 고한수는 현실적 생존을 위해 불법적 방법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선자는 도덕적 갈등을 겪는다. 작가는 이민자의 삶이란 단순히 국가 간 이동이 아니라, 삶 전체를 부정당한 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의 위기’를 동반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자녀 세대 역시 그 이민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노아는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일본인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진다. 『파친코』는 이처럼 이민자 삶의 현실적 고통과 심리적 충돌을 세밀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뿌리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한국인의 정체성

『파친코』는 표면적으로 가족과 이민자의 삶을 그리지만, 그 밑바탕에는 ‘정체성’이라는 핵심 주제가 흐르고 있다. 특히 일본 사회 내 조선인 2세, 3세로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이 작품의 중심 갈등 중 하나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을 모른 채 일본에서 자란 이들은 국적과 문화, 언어에서의 이중성을 안고 살아간다. 노아는 일본에서 성공하고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지만, 사회의 보이지 않는 경계는 그를 끊임없이 ‘이방인’으로 규정한다. 결국 그는 자아를 지키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반면, 모자수는 조선인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파친코 사업을 통해 현실에 정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두 인물의 대비는 정체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자는 한국의 문화를 고수하고 후손에게 전하려 애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진다. 손주 세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어조차 모르는 현실이 도래하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기록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체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소멸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정체성은 단순한 민족적 개념이 아닌, ‘삶의 방식’이자 ‘존재의 이유’로 기능한다. 『파친코』는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역사 속 고통과 억압을 딛고도 살아남은 문화적 자의식이며, 그 유산은 기억하고 전승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문학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파친코』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도, 이민자 이야기만도 아니다. 이 작품은 시대의 억압 속에서 살아간 개인들의 삶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지, 이민자의 현실은 어떤 구조적 모순을 내포하는지, 그리고 정체성이란 무엇으로 구성되고 유지되는지를 묻는다. 이민진은 『파친코』를 통해 독자에게 정체성의 의미를 되묻고, 기억과 계승의 중요성을 문학적으로 강조한다. 이 작품은 문학이 현실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대 한국계 문학이며,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강력한 울림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