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는 김용키 작가가 2018년부터 네이버 웹툰을 통해 연재한 심리 스릴러이며, 이후 드라마화되며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단순한 장르 문학을 넘어서 인간 심리의 어두운 단면과 사회 구조 속 고립된 개인의 내면을 정밀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문학적으로도 분석할 가치가 크다. 특히 ‘고시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한국 사회 청년층의 불안과 생존,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정체성 혼란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번 글에서는 ‘고시원 공포’, ‘불안의 축적’, ‘인간의 이면’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작품이 왜 현대 심리공포 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지 문학적 깊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고시원이라는 밀폐 공간의 심리적 억압
고시원은 물리적으로 협소하고 구조적으로 폐쇄된 공간이다. 그러나 김용키는 이 공간을 단지 배경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주인공 윤종우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처럼 활용한다. 윤종우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평범한 청년이며, 처음에는 자신의 꿈을 위해 고시원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감수한다. 그러나 곧 그는 이 공간이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방음이 되지 않는 얇은 벽, 창문 없는 복도,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의 입주자들, 그리고 한밤중에도 쉬지 않는 타인의 소리. 이 모든 요소는 독자로 하여금 ‘감시받고 있다’는 심리적 억압을 체험하게 만든다. 특히 고시원 주민들의 얼굴이나 행동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독자는 종우의 시선을 통해 이들이 실제로 위험한 존재인지, 아니면 종우의 불안이 만든 환상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이처럼 고시원은 단지 저소득층의 주거 공간이 아닌, 개인이 사회와 단절되며 고립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의 상징이다. 문학적으로는 ‘현대적 지옥’으로서의 공간, 즉 타자와의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현대 도시인의 현실을 강하게 반영한다. 이 작품은 고시원을 통해 단절과 침범의 공포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며, 한국 사회 특유의 공간적 불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불안의 축적과 일상 속 파괴의 전조
김용키는 공포의 장면을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연출하기보다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축적되는지를 보여준다. 윤종우는 처음에는 단지 불쾌한 느낌만 받을 뿐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시원 주민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에게 심리적 압박을 준다. 예컨대 아무런 표정 없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웃, 무표정으로 반복되는 기괴한 말투, 어둠 속에서 마주친 어떤 눈빛. 이 모든 요소들은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진 않지만, 독자로 하여금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공포를 안겨준다. 이 같은 설정은 호러 문학에서 자주 활용되는 ‘불안의 서사화’ 기법이다. 특히 종우가 점차 수면장애와 환각에 시달리게 되는 과정은 독자에게 일상 속 정신적 파괴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김용키는 이를 통해 단지 공포의 대상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심리 내부에도 있음을 시사한다. 즉,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곧 자기 내부의 불안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 ‘불안의 축적’은 점차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고시원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종우의 주관적 공포인지, 실제인지 독자조차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문학적으로 이 기법은 독자를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이야기 내부에 휘말리는 ‘체험자’로 변화시키며, 작품의 몰입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린다.
인간의 이면에 감춰진 폭력성과 자기합리화
‘타인은 지옥이다’는 단지 타인을 괴물화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작중의 타인들이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괴물이 된다는 점이다. 서문조라는 인물은 친절하고 말수가 적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철저히 계산된 잔혹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폭력성조차 ‘타인은 지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한다.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단지 악역의 특성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잠재적으로 지닌 위험한 본성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용키는 극 중 인물들을 단선적으로 악하게 그리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받은 상처와 외로움을 지니고 있으며, 그 결과로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공포의 원천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타인은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우리가 타인을 지옥으로 만드는 존재인가? 이러한 의문은 결국 독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문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다층적 인물 묘사는 인간의 ‘다면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며, 독자는 어느 누구도 온전히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는 점에서 심리적 혼란을 겪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심리 문학으로 전환된다. 결국 ‘타인은 지옥이다’는 우리가 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본성을 거울처럼 비추는 공포 문학이다.
결론
‘타인은 지옥이다’는 공포라는 장르적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본질은 타자와 자기 사이의 경계를 묻는 철학적 질문에 있다.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도시화 속에서 고립된 개인을 대변하며, 축적되는 불안은 단지 외부 요인이 아닌 자기 내부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김용키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이면의 폭력성과 방어 기제를 조명하며, 독자가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만든다.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사회의 병리적 구조를 꿰뚫는 문학적 성찰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