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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가족 해체, 유년의 기억, 사회적 외로움)

by 생각의 잔상 2025. 8. 10.

가족 해체 관련 사진

백온유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눈에 띄는 사건 없이도 내면을 관통하는 문학의 힘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일상의 결을 따라가며 인물의 정서적 균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의 잔상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특히 ‘가족 해체’, ‘유년의 기억’, ‘사회적 외로움’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는 단지 이야기의 소재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과 직결된 정서적 층위다. 백온유는 이 감정들을 극적인 장치 없이 조용히 누적시키며, 독자의 마음을 조용히 흔든다. 다음은 이 작품의 주제를 중심으로 세부적으로 분석한 내용이다.

가족 해체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가족 내부의 불균형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부모의 이혼이나 가정 해체라는 소재는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백온유는 이를 사건 중심으로 다루지 않고 감정의 변화에 천착한다. 주인공은 부모의 이혼 이후, 가정이라는 공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점차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익숙하던 공간은 낯설게 느껴지고, 안정감을 주던 일상은 불안의 연속으로 전환된다. 특히 가족 구성원 간의 침묵은 해체의 시작이자 끝을 상징하며, 감정이 말이 아닌 분위기와 태도로 전달된다.

작품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감정을 외면하고 묻어두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반복되는 일상에 스스로를 가두며, 아버지는 무언의 부재로 가정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주인공은 그러한 부모를 바라보며,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개념에 회의를 갖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가족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명확한 전환점 없이 조용히 이루어지며, 독자 역시 그 변화를 함께 겪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가족 해체가 단지 이혼이나 물리적 분리가 아닌 ‘심리적 연결의 단절’임을 보여주는 점에서, 이 소설은 특별하다. 부모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이라는 기능을 상실한 가족, 그 안에서 성장하는 인물의 내면은 복합적이고 혼란스럽다. 백온유는 이처럼 해체된 관계 속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외로움, 분노, 체념 등을 세밀하게 포착하며,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정서적 공백을 은유한다. 독자는 이 과정을 따라가며, 자신의 삶 속에서 겪은 비슷한 감정을 되짚고 공감하게 된다.

유년의 기억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유년기의 기억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구성하고, 미래를 결정짓는 정체성의 핵심 축이다. 주인공은 불완전한 가정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기억은 자주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작품은 이러한 기억의 조각들을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서술하면서, 주인공이 여전히 그 시절의 감정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점은 백온유 특유의 문장 구조와 서술 리듬을 통해 더욱 부각되며, 시간의 흐름이 아닌 감정의 강도에 따라 이야기가 움직인다.

어린 시절의 특정 장면들—식탁에 모여 앉던 순간, 주말마다 가던 공원, 아버지와 함께 걷던 좁은 골목길 등—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기억들은 명확한 서사보다는 이미지와 분위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자에게도 유사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유년의 한 장면이 수십 년 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 작품은 문학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또한 이 소설은 기억이라는 것이 언제나 정확하지 않고, 때로는 왜곡되며, 어떤 감정은 과장되고 어떤 감정은 축소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주인공은 어느 기억이 진짜였는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 감정의 진정성만은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독자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과거의 진실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이다. 백온유는 이렇게 유년의 기억을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이를 탐색하며, 독자 각자가 자신만의 기억 속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사회적 외로움 

이 작품에서 가장 현대적인 주제는 단연 ‘사회적 외로움’이다. 개인화된 시대, 관계는 더욱 느슨해지고, 사람들은 타인에게 쉽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두기를 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이처럼 ‘적절한 거리’가 일상이 된 사회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외로움과 공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회사에서도, 거리에서도, 카페에서도 끊임없는 타인과의 접촉 속에 있으나, 실제로는 단절되어 있다. 이 아이러니가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현대적인 정서를 대변한다.

백온유는 외로움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로움은 주인공이 자신을 직면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이자, 다시 관계를 고민하게 만드는 자극제다. 소설 속에서 외로움은 단순히 고통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 된다. 주인공은 고립 속에서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의 형태를 고민한다. 이는 일종의 성찰의 시간이며, 독자에게도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그 연결은 진짜인가?"

작품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누군가와의 작은 대화를 계기로 관계를 다시 시도해 본다. 이는 화려한 결말이 아닌, 매우 소박하고 현실적인 묘사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장면은 무거운 서사 전체에 작은 빛을 비추며, 외로움의 끝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백온유는 이처럼 외로움과 회복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기보다, 그 둘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 탁월하다. 독자는 이 여정을 통해, 외로움이 더 이상 회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함께 걸어야 할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결론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가진 작품이다. 가족 해체의 후유증, 유년의 기억이 남긴 정체성의 단서, 그리고 사회적 외로움 속 관계의 재구성까지, 이 소설은 현대인의 내면을 정교하게 비춘다. 백온유의 문장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오히려 그 절제된 언어 안에서 더 많은 공감과 울림이 발생한다. 독자는 인물의 감정을 해석하고 추측하며 스스로의 경험과 연결시킨다. 그것이 이 작품이 독자 각자에게 다르게 읽히는 이유이자, 한 권의 책이 하나의 거울이 될 수 있는 문학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