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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 맹목적 모성 · 심리 추적 · 반전 서사

by 생각의 잔상 2025. 8. 2.

완전한 행복 관련 사진

정유정 작가의 소설 『완전한 행복』은 한국 현대문학에서 보기 드문 강렬한 심리 스릴러이자, 모성과 사랑, 진실과 자아라는 주제를 심도 깊게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극이나 범죄소설을 넘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듭니다. 특히 ‘맹목적 모성’, ‘심리 추적’, ‘반전 서사’라는 세 가지 주요 키워드는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가 됩니다. 지금부터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완전한 행복』의 서사를 자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맹목적 모성: 사랑인가 집착인가

『완전한 행복』의 중심축은 단연 ‘모성’입니다. 주인공 오은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녀의 모성은 전통적으로 사회에서 이상화된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어머니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정유정은 이 소설을 통해 '모성은 본능인가, 사회적 학습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제기하며, 그 모순과 한계를 파헤칩니다. 오은수의 행동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소유욕과 통제욕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순간, 그녀는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고 들며, 극단적인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하려 합니다. 정유정은 이런 왜곡된 모성을 단순히 비판하지 않고, 그 배경에 있는 인물의 성장과 상처를 세심히 짚어냅니다. 오은수는 과거 자신의 가정사에서 비롯된 결핍과 공포를 '이상적인 가족 만들기'라는 형태로 투영합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외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합니다. 그녀의 ‘완전한 행복’은 타인의 자유와 감정, 심지어 생명까지 침해하면서 얻어진 것이기에 참된 행복일 수 없습니다. 정유정은 이처럼 왜곡된 모성의 끝을 철저히 파헤치며, 독자에게 사랑과 통제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심리 추적: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정유정의 장기는 인물의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데 있습니다. 『완전한 행복』에서도 독자는 단순히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며 진실을 하나씩 조각처럼 맞춰 나갑니다. 특히, 오은수와 그녀를 추적하는 인물들 간의 심리 게임은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범행의 동기와 진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인물들의 내면 독백과 시점 변화는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판단을 유보하게 만듭니다. 가해자인 오은수는 일정 지점까지는 차분하고 지적인 여성으로 비칩니다. 그러나 서서히 그녀의 말과 행동, 회상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독자의 기대를 배반합니다. 피해자라 여겨졌던 인물이 어느 순간 가해자로 전환되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정유정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흐리며, 인간의 선과 악이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심리 추적은 단순한 범죄 해결이나 스릴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 깊숙한 어두움과 고통, 그리고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오은수는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조종하고 상처 입혔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며, 이는 독자에게도 도덕적 판단의 혼란을 가져옵니다. ‘완전한 행복’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 대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독자의 심리 깊숙한 곳을 건드립니다.

반전 서사: 예측을 거부하는 구조

『완전한 행복』은 일반적인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와는 다른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의 서사는 초반에 사건이 발생하고, 중반부터 단서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며, 결말에서 반전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정유정은 이 공식을 비틀어, 초반부터 독자가 어느 정도 진실을 짐작하게 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심과 반전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특히 이 작품의 반전은 단순히 '놀라움'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기억, 내면의 층위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결과입니다. 기억의 왜곡, 자기 합리화,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서사 전반에 걸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오은수는 자신의 행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그 내부에는 지배 욕구와 두려움, 그리고 결핍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전’은 결국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모순에서 비롯된 것으로, 단순한 서프라이즈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정유정은 플롯을 통해 사건을 나열하는 대신, 인물의 심리를 따라 시간과 공간, 기억을 오가며 서사를 직조합니다. 이로 인해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도 진실에 대해 완전히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는 곧 독자가 소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해석하게 만드는 힘이 되며, 문학적 깊이를 더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반전은 놀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임을 이 소설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결론

『완전한 행복』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행복'이라 믿고 추구하는 것의 본질을 묻고, 그 과정에서 무심코 외면해온 진실과 감정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정유정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폭력, 모성이라는 명분 뒤에 숨겨진 통제욕, 그리고 행복을 위한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조명합니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마음 한켠에 불편함이 남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진짜 문학이 던지는 울림이며,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