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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 상실과 기억 · 단편의 묘미 · 인간 관계

by 생각의 잔상 2025. 7. 31.

오직 두 사람 관련 사진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은 2017년 발표된 단편집으로, 출간 직후부터 독자와 평단 모두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 책은 ‘나’와 ‘그’, ‘우리’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인간 관계의 본질, 그리고 관계가 깨졌을 때 남는 상실의 감정과 기억의 왜곡에 대한 정교한 탐구를 담고 있다. 특히 표제작 「오직 두 사람」은 한 인물이 딸을 잃고 겪는 감정의 미세한 변화와 복잡한 내면 풍경을 극도로 절제된 문장 안에 담아내며, 문학의 힘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영하는 일상의 언어로 비범한 주제를 포착해내는 능력을 지녔다. 이 글에서는 『오직 두 사람』 속에 내포된 세 가지 중심 키워드—상실과 기억, 단편의 묘미, 인간 관계—를 중심으로 작품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줄거리 해석을 넘어서, 김영하 문학의 미학적, 철학적 깊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상실과 기억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은 주인공이 딸을 잃은 후 겪는 내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단순히 슬픔이나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감정의 저장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상실은 현실에서 한 순간에 발생하지만, 그 이후 남은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이어지는 감정적 파동이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그 애는 정말 나를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이는 단순한 슬픔이 아닌,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와 자기 확신의 붕괴를 의미한다. 김영하는 이처럼 상실이라는 거대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기억 속 장면들을 조각처럼 배열함으로써 독자에게 정서적 파편을 안긴다. 특히, 딸과 나눈 마지막 대화, 평범했던 일상, 오해처럼 스쳐 지나간 순간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며, 인물의 감정은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출렁인다. 이는 곧 기억의 왜곡이자, 인간이 상실을 극복하려 애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는 과거를 사실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주인공의 기억을 통해 재구성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든다. 이로써 독자는 상실을 단지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정서적 서사로 이해하게 된다. 『오직 두 사람』은 이처럼 감정의 연속성과 기억의 주관성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단편의 묘미

『오직 두 사람』은 단편이라는 형식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김영하는 짧은 분량 속에서도 감정의 밀도를 높이고, 불필요한 설명을 배제함으로써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넓게 남긴다. 「오직 두 사람」은 극적인 사건이나 반전보다는, 조용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의 파열음을 통해 긴 여운을 남긴다. 이는 곧 단편 문학의 본질이기도 하다. 김영하는 서두에서 일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후, 점차 감정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후반부에는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정서적 충격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속에도 감정은 결코 과잉되지 않으며, 문장은 오히려 담백하고 절제되어 있다. 작가의 문체는 언뜻 간결하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의미와 정서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각 문장을 천천히 곱씹게 만들며, 단어 하나하나가 감정의 진폭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김영하는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누락된 정보와 단서를 통해 독자의 추론을 유도한다. 이러한 기법은 독자 각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주며, 텍스트의 해석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단편은 압축의 예술이다. 김영하는 이 점을 완벽히 활용해, 단편소설 한 편만으로도 장편 이상의 정서적 충격을 선사한다. 『오직 두 사람』은 그 점에서 한국 현대 단편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인간 관계

김영하의 작품에서 인간 관계는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 『오직 두 사람』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딸이라는 분명한 관계 속에서도, 주인공은 딸의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스스로를 부정한다. 이는 단지 부모와 자식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관계 전반의 본질을 묻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려 하지만, 그 관계는 언제나 완전하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김영하는 ‘확실한 사랑’, ‘진실한 유대’ 같은 개념에 의문을 던진다. 딸의 죽음 이후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내가 정말 그 아이를 이해했는가, 그녀는 나를 필요로 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는 모든 인간 관계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한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 속에서 재구성되며, 감정 역시 변형된다. 김영하는 이 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특히 ‘오직 두 사람’이라는 제목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세계를 상징하지만, 그조차도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지만, 그 타인은 늘 타인일 수밖에 없다. 김영하의 소설은 이러한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도 여전히 관계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관계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흐름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룬 『오직 두 사람』은,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결론

『오직 두 사람』은 상실의 고통과 기억의 왜곡, 그리고 인간 관계의 불완전함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단편 형식 안에서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김영하는 불필요한 설명 없이도 깊은 감정을 전달하며, 단편 문학의 정수이자 감정의 울림을 보여주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은 단지 이야기의 전달을 넘어, 독자의 감정과 사유를 자극하는 정서적 공간을 제공한다. 삶 속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상실과 단절을 다루지만, 그 안에서 여전히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드러냄으로써 문학이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고 성장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오직 두 사람』은 단편이 어떻게 큰 진실을 담을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꼭 읽어야 할 한국 문학의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