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정말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적이 있다. 겨우내 독감에 걸려 겨울방학 내내 공부는커녕 기초 개념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신학기를 맞이했고,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그 당시 ‘방학 첫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매일같이 들었다.
그 후로도 내 삶 속에서는 몇 번이고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실수했던 말, 놓쳐버린 기회, 그리고 어긋났던 인연들.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언가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시간이라는 것은 되돌릴 수 없을까? 시간이 뒤로 흐른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단순한 상상이지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물리학, 철학, 심리학, 심지어는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 인식까지 닿게 된다. 이 글에서는 열역학 법칙, 인과관계의 본질, 그리고 기억의 구조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시간 역행이 실제로 가능할지, 그리고 그 가능성이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
열역학: 시간은 왜 앞으로만 흐를까?
내가 ‘시간이 거꾸로 간다면?’이라는 질문을 처음 과학적으로 고민하게 된 건 대학교 물리학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우리가 시간을 한 방향으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엔트로피의 증가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그때는 막연히 이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개념이 점점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엔트로피는 시스템의 무질서도를 나타낸다. 쉽게 말해, 사물이나 에너지가 점점 더 섞이고 흩어지며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뜨거운 커피가 식고, 얼음이 녹으며, 종이가 불에 타는 과정 모두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시간이 앞으로 흐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 엔트로피란?
상태의 무질서함을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예: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것 → 엔트로피 증가
나는 물 마시다가 실수로 컵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깨진 유리 조각이 사방에 튀었고, 청소하다가 손을 베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만약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이 컵은 공중에서 다시 손에 들어오겠지?” 하지만 물리학은 말한다. 그런 일은 발생 확률이 ‘0에 가까운 0’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상 | 시간 정방향 (실제) | 시간 역방향 (가정) |
---|---|---|
얼음 | 녹아 물이 됨 | 물이 다시 얼음으로 응축됨 |
유리컵 | 깨짐 | 산산조각이 스스로 조립됨 |
커피 | 식음 | 다시 뜨거워짐 |
사람 | 나이 듦 | 점점 어려짐 |
이처럼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물리적 사건은 비가역적이다. 즉, 한 번 일어난 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이라 불리는 개념이다.
물리학자인 아서 에딩턴은 시간의 화살이 엔트로피의 증가 방향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즉, 우주가 존재하는 한,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고,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 역행을 상상할 때, 결국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벽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과학은, 그 벽이 무너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인과관계: 원인보다 결과가 먼저 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나는 예전에 한 친구와 크게 다툰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먼저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내가 먼저 날카롭게 말을 던졌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런 경험은 인과관계에 대한 내 관점을 바꾸게 만들었다. 내가 먼저 어떤 행위를 했고, 그것이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반대라면 어떨까? 결과가 먼저 나타나고, 그 후에 원인이 생기는 세상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러한 가정은 물리학적, 철학적 패러독스를 불러온다. 대표적인 것이 할아버지 역설이다. 내가 과거로 돌아가 내 할아버지를 제거하면, 나는 태어날 수 없고, 따라서 그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는가?
상황 | 일반 시간 흐름 | 시간 역행 시 혼란 |
---|---|---|
병원 진료 | 병 걸림 → 병원 방문 | 병원 방문 → 병이 생김 |
시험 결과 | 공부 → 시험 → 성적 | 성적 발표 → 시험 → 공부 |
감정 싸움 | 갈등 → 싸움 → 후회 | 후회 → 싸움 → 갈등 |
현대 물리학에서도 양자역학에서는 ‘인과성 유지’가 매우 중요한 원칙으로 간주된다. 양자 얽힘 현상에서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동시에 상태가 결정되는 현상이 발견되었지만, 이는 여전히 ‘정보 전달 속도는 빛의 속도를 넘지 않는다’는 인과성의 법칙 내에서 설명된다.
따라서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인과관계 전체가 무너진다. 내가 어제의 선택을 오늘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기존 사고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이 세상은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건, 나의 책임 개념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무엇이 원인인지, 무엇이 결과인지 알 수 없다면, 우리는 도덕적 판단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기억: 시간의 흔적은 머릿속에 어떻게 남을까?
가끔 어릴 적 기억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처음 놀이공원에 갔던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비가 조금 왔고, 나는 처음으로 롤러코스터를 탔으며, 그날 저녁엔 삼겹살을 먹었다. 이 기억이 선명한 이유는 감정, 오감, 맥락이 함께 저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억은 시간이 앞으로 흐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면 기억은 어떻게 될까? 내가 그 놀이공원을 ‘기억하는 순간’이 아니라, 기억에서 그 장면이 점점 사라지고 ‘경험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흐름이 된다.
구분 | 일반 흐름 | 시간 역행 |
---|---|---|
정보 저장 | 경험 → 단기 기억 → 장기 기억 | 장기 기억 → 단기 기억 → 소멸 |
감정 회상 | 감정 유발 → 인지 → 해석 | 해석 소멸 → 감정 사라짐 |
인식 구조 | 시간 기반 순차적 구성 | 비순차적, 해체된 인식 구조 |
기억은 단순히 데이터의 축적이 아니라, 시간적 순서에 따라 구성되는 인지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과거의 기억이다. 하지만 시간이 거꾸로 흐르면 기억 역시 거꾸로 작동하거나 사라지게 된다. 이럴 경우 우리는 과거를 모른 채 미래로 회귀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조차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미래의 기억이 현재를 이끈다면, 우리는 정말로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일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정해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환상 속 자유를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상상은 흥미롭다. 하지만 열역학 법칙의 장벽, 인과관계의 붕괴, 기억의 소멸 등으로 인해 현실에서 실현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상은 나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관점, 선택의 무게,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왜 과거를 그리워하고, 왜 미래를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어쩌면, 시간이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댓글에 여러분들의 생각을 남겨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