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사고 파는 사회였다면 우리의 사는 모습이 어떻게 달랐을까 궁금하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이라는 같은 시간을 부여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그 시간 안에 여유를 누리고,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쫓기며 사는 걸까? 같은 1시간인데도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세 끼 식사도 못 챙긴 채 일해야 한다.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 나는 어느 날 '시간을 돈처럼 사고팔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돈이 많으면 남의 시간을 사서 내 시간을 벌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내 시간을 팔아야 한다는 구조다. 이 구조는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시간을 거래하는 사회’라는 개념은 생소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미 우리 모두가 시간의 시장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글에서는 시간의 경제적 가치, 시간과 생명가치의 연결, 그리고 시간 사용의 차이가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을 낳는지를 살펴본다.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 경제 구조 속 시간의 가치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수단이 된다. 고용계약서를 보면 우리는 ‘주 40시간 근무’라는 시간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거 시간당 얼마 드릴까요?"였다. 나의 기술이나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그 일에 얼마나 '시간'을 들였느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며, 시간이 진짜 돈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시간은 더욱 정밀하게 측정되고 거래된다. 유튜버나 스트리머들은 ‘시청자의 시간’을 팔아 수익을 얻는다. 광고는 그 시간 안에 사람들의 주의를 차지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1시간 하는 동안, 나는 그 시간을 기업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시간은 노동뿐만 아니라 소비의 과정에서도 경제 가치로 환산된다. 아래 표는 다양한 직업에서 시간 단위가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직업/활동 | 시간 단위 | 수익 발생 방식 |
---|---|---|
아르바이트 | 시간당 시급 | 노동시간만큼 수익 발생 |
유튜버 | 분당 시청 시간 | 광고 수익으로 환산 |
프리랜서 | 작업시간 | 시간 단가로 계산 |
회사원 | 월 근무 시간 | 월급으로 환산 |
이러한 구조를 보면, 시간은 개인이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일종의 ‘통화’와 같다. 문제는 이 통화가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된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1시간은 1만 원, 누군가의 1시간은 10만 원의 가치를 지닌다. 동일한 시간을 가진 두 사람이 전혀 다른 경제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곧 생명인가? - 생명가치의 금전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에서 가장 충격적인 측면은 '생명' 또한 금전적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병원에 가면 치료비와 입원비가 생명을 구하는 비용이 된다. 특히 미국이나 민영의료가 강한 국가에서는 "당신의 생명은 보험료를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연장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한번 크게 다쳐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그 당시 보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수백만 원의 병원비를 부담해야 했고, 치료 시기를 미루다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이 경험은 내게 ‘내 생명이 돈 없이는 제대로 유지될 수 없는 것’이라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시간과 돈이 생명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래 표는 생명과 시간이 어떻게 금전적으로 환산되는지를 보여준다.
상황 | 시간 요소 | 금전적 요소 |
---|---|---|
중환자실 치료 | 생존 시간 연장 | 시간당 수십만 원 비용 |
보험 청구 | 예상 생존 기간 | 위험도·나이에 따라 보험금 달라짐 |
장기 요양 | 노년기 시간 | 수년치 요양비 예상 필요 |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구조가 사람의 존엄성을 서열화한다는 점이다. ‘젊고 생산 가능한 사람’의 시간은 값비싸고, ‘노년의 비생산적 시간’은 낮게 평가된다. 장애인, 실업자, 병자 역시 시스템 안에서는 ‘경제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더 낮은 생명가치를 부여받는다. 나는 이런 관점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며, 생명을 숫자와 돈으로 평가하는 사회에 회의감을 느낀다.
누구는 시간을 사고, 누구는 판다 - 시간 불평등과 사회 구조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능력과 환경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 나는 자취하면서 느꼈다. 출근 준비, 식사 준비, 집안일, 통근 시간 등 하루의 절반은 '생존'을 위해 사용되었다. 반면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차가 있고, 부모가 아침을 챙겨주며, 회사까지 10분 거리다. 그 친구는 남는 시간에 운동하고 책도 읽는다. 같은 하루 24시간이지만, 그 질과 활용은 완전히 다르다.
이런 차이가 반복되면, 삶의 질과 기회는 점점 더 멀어진다.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공부하고 투자할 수 있고,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그날 그날을 버티기도 힘들다. 시간의 불평등은 곧 교육, 건강, 관계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아래 표는 계층별 시간 활용 차이를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계층 | 하루 여유 시간 | 활용 방식 |
---|---|---|
상류층 | 4~6시간 | 운동, 독서, 투자, 가족과 시간 |
중산층 | 2~3시간 | 휴식, 간단한 자기계발 |
저소득층 | 1시간 미만 | 생존형 휴식, 노동 후 탈진 |
시간은 단순히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삶의 방향성과 가능성을 결정짓는 자원이다. 돈이 없으면 시간을 팔 수밖에 없고, 그렇게 팔아버린 시간만큼 자신의 미래는 줄어든다. 이 구조는 세대를 넘어 세습되며, ‘시간의 계급화’를 심화시킨다. 나는 이 현실을 보며, 시간이라는 자원을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다.
시간은 곧 삶이고, 생명이며, 자유다. 그 시간을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는 사회만이 진정한 평등 사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