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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관, 인물, 상징

by 생각의 잔상 2025. 7. 28.

보건교사 관련 사진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가 201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평범한 고등학교 보건교사인 주인공 안은영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을 보고, 퇴마 활동을 벌이는 인물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퇴마 액션 판타지로 읽히기보다는, 청소년의 불안과 상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개인이 감당하는 내면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문학적 작품으로 더 깊게 평가받고 있다. 정세랑은 특유의 유머와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무겁지 않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하며,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을 선보인다. 본 글에서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관 구성, 인물의 입체성, 그리고 작품을 관통하는 상징체계를 통해 이 소설의 문학적 깊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학교라는 일상 속 판타지 세계관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학교라는 일상적 공간이 초자연적 세계로 확장되는 방식이다. 작가는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여기는 공간—고등학교라는 시스템 안에—무형의 악과 고통, 상처가 실재한다는 전제를 부여함으로써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한다. ‘한문고’라는 배경은 현실적으로 묘사되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젤리 형태의 영적 존재들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강한 공포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설정은 곧 현실 속 무형의 스트레스와 억압, 감정의 잔재가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났을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젤리는 인간의 감정과 기억, 억눌린 욕망이 뒤엉킨 덩어리이며, 이들은 학교 곳곳에 퍼져 있다. 이 세계관은 단순히 퇴마라는 장르적 재미를 위한 설정이 아니라, 학생들이 겪는 정서적 문제, 구조적인 폭력, 무관심 속에서 누적된 심리적 고통이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이 느끼는 무력감, 청소년기의 혼란스러움, 외부와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또한 이 세계관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섞여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 장르의 전형성을 따르면서도 현실 비판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독특한 구조를 이룬다.

안은영은 이 세계에서 단독으로 행동하지만, 그녀가 처한 환경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일상과 판타지의 겹침 속에서 그녀의 고독과 소외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어쩌면 젤리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유도하며, 삶의 이면을 성찰하게 만든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처럼 판타지라는 외피 속에 현실적인 고통과 구조적인 문제를 끌어들이는 데 탁월한 문학적 장치를 보여준다.

안은영과 주변 인물의 입체적 구성

안은영이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히어로와는 다르다. 그녀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은 삶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기는커녕 그녀를 끊임없이 고립시키고 소모시키는 존재다. 귀신이나 젤리를 보는 능력은 타인과의 공감대를 허물고, 오히려 은영을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안은영은 자신이 가진 능력에 책임감을 느끼고, 보이지 않는 고통을 정화하려는 사명감을 지닌다. 그녀의 고독은 초능력자라는 설정의 결과물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을 알아채고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의 고유한 윤리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초월적 존재이기 이전에 ‘무거운 현실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홍인표는 은영의 능력을 전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도와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학교의 한문 교사이며,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 보호막을 통해 은영의 퇴마 활동을 돕는다. 홍인표는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그 능력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로 시작하여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은영과의 관계 속에서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해간다. 이들은 단순한 로맨틱 파트너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와 사명을 이해하는 협력자다. 이는 전통적인 남녀 주인공의 관계를 전복하는 구조로도 읽힌다.

그 외에도 다수의 조연 인물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학교 내 학생들, 동료 교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자의 사연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다. 예컨대, 정체성 혼란, 따돌림, 가정 문제, 자해 등의 주제를 통해 현실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인물 구성은 단순한 배경 설명이 아닌, 이야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기능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작가는 이처럼 입체적인 인물들로 세계관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독자와의 감정적 연결을 강화한다.

젤리와 빛총, 독창적 상징의 힘

『보건교사 안은영』의 가장 창의적인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젤리’와 ‘빛총’이라는 상징체계다. 젤리는 감정이나 기억, 상처 같은 추상적 개념을 시각화한 존재다. 이들은 대개 불쾌하고 끈적거리며, 공간을 오염시키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젤리는 무조건적으로 악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어떤 사건이나 감정이 처리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흔적이며, 우리가 무시하거나 숨겨온 ‘감정의 잔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치유되지 않은 감정이 결국 공간과 사람을 어떻게 병들게 만드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안은영이 사용하는 ‘빛총’은 이러한 젤리를 제거하는 도구다. 이 빛총은 말 그대로 빛을 발사하는 장치로,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총이 결코 폭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퇴마물에서 귀신을 제거하는 도구가 공격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인 데 비해, 안은영의 빛총은 공감과 위로, 정화의 힘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작가가 폭력에 의한 해결보다는 이해와 치유를 통해 문제를 바라보기를 제안하는 태도로 읽힌다.

또한 젤리와 빛총 외에도,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한문고등학교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모든 인간 군상과 사회적 문제가 응축된 장소이며, 우리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억압과 충돌이 상징적으로 형상화된 곳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징들을 통해 단순히 귀신을 쫓는 이야기를 넘어서, 사회적 상처와 내면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상징체계는 『보건교사 안은영』을 단순한 장르물의 차원을 넘어선 문학 작품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다.

결론

『보건교사 안은영』은 단순한 퇴마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일상이라는 평범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적인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온 감정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조명한다. 학교라는 공간, 젤리라는 존재, 빛총이라는 도구는 모두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구원의 메타포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해야 할 것은 ‘귀신’이 아니라,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결국 이 작품은 이해받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이며, 공감과 돌봄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퇴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