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름'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상해보게 됩니다. 만약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하고, 나처럼 행동한다면 어떨까요? 갈등도 줄고, 오해도 없으며, 세상이 훨씬 더 단순하고 편안해질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모두가 나와 같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살게 될까요? 이번 글에서는 이 상상 속 가정을 바탕으로 '자아 상실', '통일 사회',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에 중요한 철학적·사회적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자아 상실 -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정체성은 타인과의 차이 속에서 형성됩니다. 내가 누군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고, 사회적 관계 안에서 내 위치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아진다면, 비교 대상이 사라지고, 다름이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자아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자아 상실은 단순히 ‘개성’을 잃는 수준을 넘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잃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정답만을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 조직의 규범에 적응해야만 살아남는 직장 문화, SNS에서의 획일적인 이미지 소비 등은 개인에게 '나로 살기'보다는 '평균적인 사람으로 살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림자’는 나와 다른 존재,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타인의 모습입니다. 즉, 다름을 마주하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모두가 나와 같다'는 상황은 겉보기에는 안정적일 수 있지만, 개인은 더 깊은 정체성의 공허 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학, 발명, 창의성 등 인간의 고유한 사고 활동들은 대부분 ‘다름’에서 출발합니다. 모두가 같은 사고를 한다면, 새로운 것은 더 이상 탄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아를 상실한 사회는 창조성을 잃은 사회이기도 합니다.
통일 사회 - 평등인가 획일화인가?
‘통일 사회’라는 말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들릴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갈등이 사라지고, 모두가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며,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사회.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상당한 위험성을 동반합니다. 특히 그 통일이 '자발적 선택'이 아닌 '사회적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획일화된 사회입니다. 획일화는 자유를 억압합니다. 표현의 자유, 삶의 방식, 감정 표현, 심지어 사고의 자유까지 제한되면 개인은 기능적 존재로 전락합니다. 현실적으로 북한이나 과거 전체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에게 동일한 이념, 동일한 외모, 동일한 감정을 요구하는 사회는 불만을 억누르며 유지되지만, 결국 내부의 긴장을 폭발시키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점점 더 유사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알고리즘에 의해 비슷한 생각을 접하게 되며, 비슷한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받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권을 줄이고, 사회 전반에 걸쳐 ‘비슷함’이라는 가치를 암묵적으로 강요하게 만듭니다. 교육, 언론, 정치, 문화 전반에서 ‘다양성’보다 ‘효율성’이 우선시될 때, 우리는 점점 하나의 집단, 하나의 성격,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되기를 강요받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질서정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억압된 욕망과 억지로 눌린 감정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사회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충돌 - 동일함 속의 불협화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같음’은 반드시 갈등을 줄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겉으로 같아 보이지만 실은 억눌려 있는 다름이 사회 전반에 존재할 경우, 충돌은 더욱 격렬하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위선'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압력이 클수록, 사람들은 내면의 진짜 생각을 숨기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표면의 평화’와 ‘내면의 긴장’이라는 이중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겉으로는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의심하고, 신뢰하지 못하며, 내부적으로는 경쟁과 불안, 두려움이 쌓여갑니다. 특히 동일함이 권력적으로 강요될 때, 그에 대한 반동으로 강력한 사회운동이나 저항이 발생합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동일함을 강요한 체제가 붕괴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프랑스 혁명,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등도 모두 억압된 다수가 동일함을 강요받던 상황에서 발생한 충돌입니다.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충돌도 발생합니다. 자아를 억제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점점 내면에서 분열되며, 우울, 불안, 자살 충동 등의 극단적 심리상태에 빠질 위험이 커집니다. 미국심리학협회는 ‘정체성 억압’이 장기적으로 개인의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합니다. 이렇듯, 모두가 같아지려는 시도는 겉보기에는 조화로워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억눌린 다양성과 억압된 감정들이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충돌’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름 속의 조화, 그것이 진정한 사회
‘모두가 나와 같다면’이라는 상상은 흥미롭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자아를 침식시키고, 사회를 획일화하며, 더 큰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전제입니다. 인간은 다름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공존합니다. 자아가 살아 숨 쉬고, 다양성이 존중되며,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통일된 사회입니다. 완전한 동일함이 아닌, 조화로운 다름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