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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면 (트라우마, 뇌과학, 윤리)

by 생각의 잔상 2025. 6. 30.

기억 관련 사진

우리는 누구나 기억 속에 지우고 싶은 한 장면쯤은 갖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지우고 싶은지 묻고 싶다. 나 역시 학창시절 겪었던 몇 가지 부끄러운 일들,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경험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움츠러든다. 특히 몇 년 전, 가까운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던 기억은 여전히 내 일상에 영향을 준다. 만약 그 기억을 완전히 삭제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과연 트라우마 같은 기억을 지우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일까? 이번 글에서는 ‘기억 삭제’라는 개념을 과학적 사실, 인간의 욕망, 그리고 윤리적 질문의 관점에서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

트라우마 기억, 정말 지우는 게 나를 위한 일일까?

트라우마란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생기는 심리적 상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전쟁, 사고, 학대, 배신 등 심각한 상황에서 발생한 기억은 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나 역시 20대 초반, 한 번의 교통사고 경험 이후로 운전대를 잡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불안 증세를 겪은 적이 있다. 이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중 하나이며,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트라우마 기억은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니라, 뇌 구조 자체에 뿌리박힌 감정과 연관된 기억이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이러한 기억을 완전히 지우거나 희미하게 만드는 방법들이 연구되고 있다. 대표적인 약물은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이다. 이 약물은 원래 심장 질환 치료에 사용되었으나,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하는 성질을 활용해 특정 기억을 떠올리게 한 뒤 감정 반응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트라우마 치료에 응용되고 있다. 심리치료에서는 EMDR(안구운동 탈감작 재처리) 기법처럼 기억을 간접적으로 재구성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치료의 전제는 ‘기억을 지우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실제로 어떤 기억은 고통스럽지만 삶의 방향을 바꾸는 교훈이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그 사고 이후 운전에 대해 훨씬 조심하게 되었고, 위험 상황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었다. 즉, 기억 삭제가 항상 이로운 것만은 아닐 수 있다.

트라우마 치료 접근법 비교
방법 내용 장점 단점
약물요법 (프로프라놀롤) 감정 반응 차단 즉각적 효과, 생물학적 접근 기억 왜곡 가능성
심리치료 (EMDR 등) 기억 재처리 안전하고 점진적 시간 소요, 효과 개인차 큼
기억 삭제 기술 (미래형) 기억 제거 또는 수정 근본적 제거 가능 윤리적 논란, 부작용 미확인

결론적으로 트라우마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정체성의 조작’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단지 기술의 발전만을 믿고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기억은 뇌의 어디에 저장되며, 실제로 지울 수 있을까?

기억은 뇌의 여러 부위가 협력하여 저장하고 유지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뇌과학적으로 기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감각 기억, 단기 기억, 장기 기억이다. 감각 기억은 매우 짧고, 단기 기억은 해마를 통해 처리된다. 장기 기억은 대뇌피질로 분산 저장된다. 특히 감정과 연결된 기억은 편도체와 해마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 삭제 기술은 이러한 특정 뇌 영역의 뉴런 활동을 조작함으로써 실현 가능성이 생겼다. MIT의 옵토제네틱스(optogenetics) 연구에서는 빛을 통해 뇌세포를 자극하거나 억제하여 생쥐의 특정 기억을 활성화하거나 억누르는 데 성공하였다. 이 기술은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뉴런에 주입한 뒤, 특정 파장의 빛을 비춰 뉴런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즉, 이론적으로는 특정 기억을 켜고 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인간에게 적용하기에는 윤리, 안정성, 정밀도 문제 등 수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기억이 단순히 ‘정보’가 아니라 ‘경험’과 ‘감정’이 얽힌 구조이기 때문에, 특정 기억을 지운다고 해서 관련된 감정까지 완전히 제거되는 것도 아니다. 나의 경우, 오래전에 상처받은 관계의 사건은 상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불안한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기억의 ‘정보’와 ‘정서’가 다른 방식으로 뇌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분류 및 저장 위치
기억 유형 예시 저장 위치 삭제 난이도
감각 기억 눈 깜빡임 직전 본 장면 감각 피질 낮음
단기 기억 방금 들은 전화번호 해마 중간
장기 기억 (감정 포함) 첫사랑의 기억, 사고의 공포 편도체 + 대뇌피질 매우 높음

결국 기억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것'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뇌과학은 가능성을 열었지만, 인간의 경험은 단순히 뉴런의 활동으로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 삭제는 과연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가?

기억 삭제 기술이 만약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단순히 기술의 가능성보다 그 영향력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그 기억을 지운다면, 그는 법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또는 연인과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삭제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고 할 때, 그 관계는 진실된 것일까? 나도 문득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속이고, 그 기억을 지운다면 나는 정말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기억은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도덕적 책임과도 연결되어 있다. 또한 삭제된 기억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기억은 그대로 남는다. 그렇다면 과연 개인의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윤리학자들은 기억 삭제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정체성 왜곡’, ‘사회적 책임 회피’, ‘기억의 불균형’ 등을 꼽는다.

기억 삭제의 윤리적 쟁점
쟁점 설명 사회적 영향
정체성 왜곡 삶의 핵심 기억이 사라지면 자기 인식이 흔들릴 수 있음 심리적 불안정, 존재의식 혼란
책임 회피 불법 행위나 도덕적 잘못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유혹 법적 혼란, 피해자 고통 지속
기억 불균형 삭제된 기억이 사회나 가족 내에만 존재하는 문제 관계 왜곡, 정보 비대칭

기억을 지울 권리는 분명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책임과 인간다움의 본질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냉정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억 삭제는 단순히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도덕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문제이며, 그 실행은 결코 가볍게 다뤄져선 안 된다.